불안의 해독제 2025는 ‘어쩌다 예술가’를 통해
김포 지역 예술가의 모임으로 발전한 G-CACA(지카카)의
세번째 단체전 ‘9인 9현’에 참여한 작품을 소개합니다.
총 8개의 작품 중 6개의 작품이 주요 작품입니다.
전시장을 방문하신 모든 분들과
비치된 엽서를 가져가신 모든 분들의
불안이 해독되기를 기원합니다.
작품 리스트
인사말
안녕하세요. ‘김포 지역 예술가’ 이유리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저의 불안의 해독제을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G-CACA 단체전 이 세 번째를 맞이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9인 9현’입니다. 지카카의 9명의 멤버가 각자의 작품을 선보이는 소중한 전시입니다. 처음 김포에서 문화예술 교육을 받던 때, 저는 그저 일곱 살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작가’라는 꿈은 멀게만 느껴졌고, 심리 상담을 받으며 스스로를 다독이던 시간이었습니다. 문화예술이 마음의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김포문화재단의 문을 두드린 것이 벌써 4년 전의 일이 되었습니다.
지난 4년의 시간동안 어떤 경험들이 있었는지 떠올려보면, 두 번의 교육을 마치고 성과공유회에 참여할 수 있었고, 작년에는 감사하게도 김포문화재단의 후원으로 개인전이라는 꿈같은 경험도 할 수 있었습니다.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저는 김포에서 많은 것을 해내고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가 아닌 ‘김포 지역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특히 이 경험들을 통해 저의 삶과 생각을 깊이 돌아보고 사유하는 시간을 선물하며, 저를 하나의 주체로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소중한 경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안고, 그동안 무섭거나 두려워서 피해왔던 일들에 용기 내어 도전해 보고 있습니다. 덕분에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바뀐 삶의 터전에 맞춰 개인적인 사유를 디지털 드로잉과 인공지능 같은 생성형 도구를 통해 표현했습니다. 생각이 많던 제게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쁨’을 알려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사유하고 작업하며 생각의 표현을 즐기려 합니다.
전시장을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불안의 해독제
(The Antidote to Anxiety)
2025, Digital print on paper, 59.4 x 81.4cm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저에게는 늘 ‘홀로’라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평범하지 않다는 이유로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그 시선은 때론 깊은 외로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작품은 타고난 다름을 바꿀 수 없어 느껴야 했던 불안을 극복하고, 마침내 평온을 찾은 순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김포에서 문화예술 교육을 통해 제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받으며 느꼈던 감정과도 같습니다. 검은 말들 사이에 홀로 서 있는 얼룩말은 무리 속에서 느끼는 이질감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외로움이 아닌, 그 다름 속에서 발견한 자신만의 평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같은 말이지만 다른 무늬를 지녔다고 해서 말이 아닌 것은 아니다’라는 작은 생각의 전환이 오랜 불안의 해독제가 되었습니다.
모든 존재가 가진 고유한 개성은 특별함이 아닌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검은 말이든 붉은 말이든 얼룩말이든, 모두가 같은 ‘말’인 것처럼, 각자의 모습으로 세상이라는 무리 속에서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모두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스스로가 보고 싶은 방향을 바라보며 자유롭게 나아갈 의지를 갖게 됩니다.
이 작품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당당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긍정적인 마음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저에게 불안을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불안의 해독제를 플레이 하세요.
은밀한 존재
(The Subtle Presence)
2025, Digital print on paper, 42.0 x 59.4cm

무리 생활을 하지 않는 표범들이 왜 한데 모여 있는가? 그리고 그 무리 속에 홀로 빛나는 검은 그림자는 무엇인가? 이 작품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며 시작되었습니다.
단순한 색의 차이를 넘어, 흑표범은 그 존재 자체로 희소성과 신비로움을 품고 있습니다. 다른 표범들이 무늬로 스스로를 감추듯, 이 그림 속 흑표범은 짙은 어둠으로 스스로를 은둔하며 내면의 깊이를 더해온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그림은 군중 속에서도 본질을 잃지 않고, 오히려 ‘다름’을 ‘특별함’으로 인식하는 자기 자신을 표현합니다. 흔히 단독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표범들이 한데 모여 있는 모습은, 결혼과 육아를 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 작가에게 자연스럽게 형성된 가족 단위의 모임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위의 표범들과 명확히 구분되지만, 이 흑표범은 결코 소외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의 특별함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당당하게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이것은 단순히 다른 모습이 아니라, 스스로를 갈고닦으며 내면의 힘을 키워온 결과이자, 세상 속에서 스스로의 고유한 가치를 깨닫고 빛나는 존재감을 드러내는 선언입니다.
놓쳐버린 푸른 날개
(Forgotten Blue Wings)
2025, Digital print on paper, 42.0 x 59.4cm

일상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배추흰나비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갑니다. 하지만 가끔, 익숙한 풍경 속에서 찬란한 호랑나비나 제비나비를 마주할 때면, 그 존재의 경이로움에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자연 속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고, 도시에서 보기 드문 나비들을 발견하며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낍니다. 이 행복을 아이에게 나비 이야기로 전해주곤 했습니다.
매 순간 호기심으로 가득 차 모든 것을 궁금해하면서도, 정작 해야 할 일들에 쫓겨 하늘 한번 제대로 올려다보지 못하고, 나비 한 마리 온전히 바라볼 여유조차 없던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바닥의 개미 한 마리에도 경이로움을 느끼고, 학교 정원의 봄꽃에 환호하는 아이의 순수한 시선을 통해 비로소 흘러가는 시간을 다시금 인식하게 됩니다. 혹시 이 바쁜 삶 속에서, 나비의 찬란한 날개처럼 정말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작품 속 푸른 나비는 바로 그 질문이자, 잊혀진 소중함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합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평온하게 했던 바닷가 도시, 부산과 마산(창원)의 푸른 바다를 닮은 이 나비는, 잠시 멈춰 서서 삶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찾아보자는 조용한 속삭임입니다.
고양이 별
(A Cat’s Star)
2025, Digital print on paper, 42.0 x 59.4cm

어린 시절, 처음 만났던 고양이 커플과 여덟 마리의 새끼들은 아무것도 모르던 꼬마들의 삶에 작은 우주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후 삶의 여러 길목에서 마주친 수많은 길고양이들에게 마음을 쓰곤 했습니다.
추운 겨울밤, 현관문 앞에 사료를 놓아두면 새끼들까지 데려와 작은 온기를 나누고 다시 사라지던 고양이 가족들. 그 작별은 늘 안쓰러웠습니다. 5년 뒤 다시 만난 아기 고양이는 어엿한 성묘가 되어 있었고, 어미 고양이는 기력을 다한 채 햇볕 아래에서 낮잠을 즐기는 대범한 할머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떠나간 고양이들과 언젠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나누다, 만약 죽는다면 ‘파란 고양이’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드라마 속 반려동물들이 먼저 떠난 주인을 기다리듯, 저도 언젠가 그곳에서 먼저 간 고양이들을 만나기 위해 파란 고양이가 되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흰 고양이들 사이에서 홀로 빛나는 파란 고양이처럼, 먼저 떠나간 소중한 존재들을 향한 깊은 그리움과 재회에 대한 따뜻한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먼 곳의 흰 사슴
(The First Blue Paw Print)
2025, Digital print on paper, 42.0 x 59.4cm

어릴 적, 집 근처 사슴 농장에서 만난 한 마리의 사슴이 있었습니다. 삶의 목적이 분명한 존재였지만, 그 사슴이 다른 무리와 어울려 성장하는 모습은 제게 무척 신비롭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모든 사슴들이 울음을 멈추고 고요해졌을 때, 아버지는 제게 붉은 물이 담긴 컵을 건네셨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아버지와 어른들의 정성을 알기에 무덤덤하게 넘어가려 애썼습니다. 그것은 제가 처음으로 마주한 생명의 끝이었고, 이후 모든 종류의 죽음은 ‘다른 곳으로 간 것’이라 믿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이 그림은 그 사슴이 여전히 잘 지낼 것이라는 어린 시절의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에 없는 존재이지만, 이 그림 속의 사슴은 멋진 뿔을 지닌 채 멀리서도 하얀 빛을 뿜어내며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리 속에서 홀로 빛나는 백사슴은, 슬픔이 닿지 않는 평온한 세상으로 떠나 영원히 잘 지낼 것이라는 믿음을 표현합니다.
이것은 삶의 순환과 죽음에 대한 저의 첫 번째 사유이자, 떠나간 모든 존재들에게 보내는 작별이자 안부입니다.
세 번째 암을 만났습니다
(Third Time with Cancer)
2025, Digital print on paper, 59.4 x 81.4cm

삶의 여정에서 저는 가까운 지인들을 통해 깊은 암의 그림자를 세 번째이나 마주하고 있습니다. 친정아버지의 간암과 위암, 친척의 유방암, 지인의 폐암까지. 각기 다른 장기에서 발생했지만, 제게는 모두 ‘암’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20대에 갑자기 닥친 아버지의 말기암 투병은 무지함에서 나오는 막연한 두려움이었고, 친인척의 유방암은 사랑하는 가족을 갑자기 잃을지도 모른다는 상실감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이 된 지인의 폐암 소식은 제 주변에 늘 암이라는 세포가 내재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깊은 상념에 빠지게 했습니다. 또 암 가족력은 앞으로 살아가는 삶에 있어 암이라는 세포가 우리 가족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들게 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폐 모양을 한 푸른 나비, 그 아래 매달린 간과 위를 통해 사랑하는 이들의 아픔을 형상화했습니다. 희망과 평온을 상징하는 푸른 나비는 암이라는 세포가 폐에 잠시 앉았다가 적당히 원하는 것을 취하고 날아가 버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만 있으면 또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믿음. 흰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수다 떨며 살고 싶은, 너무나 젊은 나이의 소중한 이들을 향한 생명의 축원입니다.
이 그림은 암이라는 고통 앞에서 좌절하기보다, 살아내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삶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